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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역사 삼국지
  • 역사 삼국지
  • 저 자 :최진열
  • 발행자 :미지북스
  • 등록일 :2022.11.11
  • 보유 권수 :3권
  • 공급사 :교보문고
  • 대 출 :0/3권
  • 예약자수 :0명
  • 소속도서관 :통합
  • 추천수 :0
  • 대출 여부 :가능
  • 유형 :epub
  • 지원기기 : PC 태블릿 모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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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소개


지도와 사서로 읽는 삼국 전쟁사
위진남북조시대 국내 최고 권위자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최진열 박사의 10년 노작!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와 진수의 정사『삼국지』를 넘어 가장 완전한 삼국지

국내 역사학자가 쓴 본격 삼국지 역사서이자 지도와 사서(史書)로 읽는 삼국 전쟁사. 군웅할거에서 삼국정립, 서진의 통일전쟁에 이르기까지, 난세에 답한 영웅들의 모든 이야기가 펼쳐진다. 저자 최진열 박사는 중국 위진남북조시대 관련 국내 최고 권위자로 오랜 세월 삼국지 시대의 역사에 관해 연구했다. 저자는 진수의 정사『삼국지』뿐만 아니라, 『후한서』, 『자치통감』, 『진서』 등 그 시대를 다루는 거의 모든 사료를 분석하고 종합하여, 가장 객관적인 시각에서 통사 삼국지를 새롭게 구성하였다.
이 책 『역사 삼국지』는 삼국지의 시대적 배경을 이루는 지리와 지형, 인구와 경제, 군사 및 행정 제도 등을 입체적으로 조망하며, 삼국지의 극적 장면들을 구성하는 주요 전투와 군웅의 전략을 약 200개의 지도로 상세히 밝혔다. 국내에 출간된 삼국지 관련 도서 중 학문적 권위와 지식의 깊이, 인물과 역사 비평의 측면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책이며, 모든 사료를 망라하여 집대성한 삼국지 역사의 최고 걸작이다.

목차

책을 펴내며
서장: 정사 삼국지와 소설 삼국지를 넘어서

1장 삼국지의 무대
2장 후한 붕괴의 정치사
3장 동탁, 천하를 찢어놓다
4장 군웅할거시대가 열리다
5장 최강 군벌의 혈투: 원소와 공손찬
6장 황하 이남 군웅의 혼전
7장 조조, 헌제를 끼고 천하를 호령하다
8장 하북의 원소와 하남의 조조, 자웅을 가리다
9장 손책과 손권, 강동을 지배하다
10장 적벽대전과 유비의 기사회생
11장 대기만성 유비, 드디어 인생 역전
12장 관우와 함께 퇴장한 영웅들
13장 조조의 죽음과 위나라의 건국
14장 실리보다 의리를 택한 유비의 비참한 최후
15장 삼국시대 정치
16장 삼국시대 경제와 지리
17장 삼국시대 전쟁사 1: 제갈량의 북벌
18장 삼국시대 전쟁사 2: 중원 왕조의 파촉·강남 정복
19장 서진의 통일과 자멸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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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자 : 최진열
저자 : 최진열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동국대, 동덕여대, 경인교대 등지에서 강의했으며 현재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연구교수로 있다. 중국 고중세사와 유목국가, 동서 문화 교류, 한국 고대사, 한중 관계사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와 독서에 열중하고 있다. 저서로 『북위황제 순행과 호한사회』(2011), 『발해 국호 연구』(2015), 『효문제의 ‘한화’정책과 낙양 호인사회』(2016), 『중국 북조 지방통치 연구』(2019) 등이 있으며, 이 가운데 『효문제의 ‘한화’정책과 낙양 호인사회』는 2017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다. 그 밖에 『대륙에 서다: 2천 년 중국 역사 속으로 뛰어든 한국인들』(2010), 『마주 보는 세계사 교실 2』(2008) 등의 대중 교양서를 썼다. 앞의 책은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로, 뒤의 책은 2008년 대한출판문화협회 올해의 청소년도서로 선정되었다. 또한 「한초 군국제와 지방통치책」(2004), 「후한시대 내군 군병의 존재와 운용」(2022), 「삼국시대 천하관념과 그 현실적 변용」(1999), 「『삼국지』의 연대·지명의 오류: 후한말 손책·손권 정권의 기록, 적벽대전과 제갈량의 마지막 북벌 기록을 중심으로」(2019) 등 7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출판사 서평

null위한 기본 바탕이 되었다.

조조의 전략적 관점 - 방어보다 공격
조조는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북쪽의 원소, 동쪽의 도겸, 남쪽의 원술, 서쪽의 여포 등 언제라도 적이 침공해올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조의 전략적 관점은 수도를 소극적으로 방어하기보다는 주변 지역을 공격적으로 정복하는 것이었다. 허(허창)로 천도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수도 허의 주변은 높은 산지가 없고 평지가 많아 방어에 유리한 지형이 아니었다. 조조가 주목한 것은 경제력이었다. 그는 천도를 단행한 196년에 둔전제를 실시했는데, 양민들을 모집해 그들로 하여금 허 일대에서 둔전을 경작하게 했다. 둔전은 원래 변경에 주둔한 군사들이 현지에서 농사를 지어 직접 군량을 충당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조는 변경이 아니라 수도 인근에서, 병사들이 아니라 백성들이 농사를 짓게 했다. 그리고 수리 시설을 확충해 토지를 관개했고 그 결과 곡식 100만 석을 얻었다. 또한 운하망을 구축하여 군량 수송을 용이하게 했다. 훗날 촉나라를 정복한 위나라의 장군 등애는 당시 조조가 둔전을 실시하여 곡식을 저축한 덕분에 이를 토대로 사방을 제압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즉 조조는 둔전제를 통해 기존의 경제력에 추가적인 군량 생산을 가능케 하고 군량 수송 부담을 줄임으로써 화북을 통일하기 위한 물질적인 토대를 갖추었던 것이다.

조조는 어떻게 화북을 통일했는가? - 선택과 집중
조조가 화북을 통일한 결정적인 계기는 원소와 대결한 관도 전투(200년)였다. 사료의 호구수를 분석해볼 때 원소는 최대 1,200만 명, 조조는 700만 명의 인구를 다스린 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나 실제 조조가 지배한 지역의 인구는 훨씬 적었다. 초창기 조조가 통치한 사예와 연주 일대는 전란으로 인구 유출이 극심한 지역했기 때문이다. 수도 낙양과 그 주변인 사예(우리나라의 경기도에 해당된다)는 동탁과 반동탁연합군의 전쟁터가 되었고, 동탁이 장안으로 천도한 후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게다가 초창기에 조조는 원소의 부하나 다름없는 지위였다. 그러나 가족을 인질로 보내라는 원소의 요구를 거절하고 헌제를 허로 데려옴으로써 조조는 그야말로 원소와 맞서는 경쟁 군벌로 재탄생했다.
당시 원소는 최강의 기병대를 거느렸던 공손찬을 꺾고 기주, 청주, 병주, 유주 등 4주를 지배했는데, 조조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밖에 없는 우세